"저기, 영어 이름이 뭔가요?"
우리나라 영어학원을 가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입니다. 아, english name이라고 하죠. 없다고 대답하면 그것도 없냐는 듯한 눈빛을 받게 되면서 좋은 이름 후보들을 쭉 가르쳐 주죠. 네이버에서 영어이름을 검색해보면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영어이름&sm=top_hty&fbm=1&ie=utf8) 수많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요즘엔 학교에도 원어민 교육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영어이름을 하나씩 짓고 있으니, 이제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탐, 존, 에슐리, 제니퍼, 킴벌리가 흔해지는 일도 얼마남지 않았군요.
저도 영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어 이름이 무엇인지 한 두번 질문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때마다 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my english name is jeongmin kim." 이렇게 대답하면, 잘 못 들은 듯 "예?" 하거나 "영어이름이 없으시군요." 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죠. 그때는 다시 똑같이 한번더 대답 합니다. "my english name is jeongmin kim." 예. 제 영어이름은 제 한국이름이랑 좀 비슷합니다. 물론, 이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당신의 영어이름을 지을 때가 되었다면, 이름을 만들기 전에, 그 이름의 용도와 쓰임새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이름은 왜 필요할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어떤 이름들의 경우 외국인이 발음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이름을 이상하게 불러주는 경우 못알아 듣거나 거북한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발음을 가르쳐달라고 몇 번씩 물어볼 수도 있고, 외국인이 이름을 잊어먹는 경우도 허다할 겁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궂이 영어 이름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내 이름의 발음이 어려운 것은 내 잘못이 아니고, 또한 발음을 하지 못하는 것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쓰는 분들에게 어려워 하는 발음은 비슷비슷해서 처음에야 그들의 발음이 한국인의 발음과 달라 어색할 뿐이지, 외국인이 나를 부를 때마다 전혀 다른 발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발음에 익숙해지면 제 이름을 부르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제 이름을 발음하면 "기무 존밍 상"이 됩니다. 하지만 알아듣습니다. 영어라고 다르진 않죠. "좐민 킴"이라 하겠죠. 이 또한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내 일본 이름은 나카무라야. 라고 하진 않잖아요. 영어에서만 왜 이름을 바꿔야 하나요? 영어를 배우는 유럽인, 남미인, 아프리카인 모두 영어이름이라면서 카톨릭 이름, 유명 배우이름으로 바꾸진 않습니다. 유독 한국사람들만 영어이름을 가지지요.
사실, 영어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우면서 영어이름을 만드는 것은 외국인 선생님의 편의를위하는 면이 큽니다. 한 반에 킴이 5명 리가 3명 박이 2명입니다. 선생님도 미칠만 하죠. ^^ 하지만, 선생님이 학생 이름이 힘들다고 학생 이름을 바꾸라고 강요해선 안되겠죠? 그분들을 위해 우리가 이름을 갈아 드릴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배려심이 엄청나다면 박봉에 힘든(?)_ 선생님을 위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는 싯구절처럼,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름을 "존 킴"으로 바꿨다면, 그에 따른 저의 정체성도 변화하게 되었겠지요. 알게모르게, 제가 가진 이름은 여러가지 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을 별다른 이유 없이 단지 영어 선생님의 편의를 위해 바꾼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몇년전 에미상에서(로 기억합니다.) 캐서린 헤이글이라는 배우가, 수상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잘못 호명한 발표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잘못 말했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전 당당한 그 모습이 멋있어보였습니다. 어려운 이름은 이름 주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름이 어렵더라도, 그건 이름 주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름을 잘못 부르는 사람이 미안해 할 일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이름을 못외우거나 잘못 부르는 사람이 잘못이 지, 이름의 주인이 욕을 먹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유독 영어에 있어서는, 이름에 대해 왜 한국인이 먼저 미안해하고, 그들에게 쉬운 이름으로 개명을하고, 그걸 뉴요커나 된 듯 뿌듯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인 에드월드가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 이름을 장동건으로 바꾼다면, 저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 네오날도 디캐프리오로 제 이름을 갈겠습니다. 그 전까진, 저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김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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