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일 화요일

돈 (1:Intro)

돈 (1:Intro)

돈은 사람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뭐, 일단 돈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겠죠.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고, 그 때문에 하루의 생활 패턴이 결정됩니다. 돈을 쓰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합니다. 즉, 돈이 없다면 내가 없고 나의 주변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꿈이나 목표가 돈이 되기도 합니다. 30살 까지 얼마, 결혼 전에 얼마...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 모두 돈으로 표현되는 시대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물질 만능시대 입니다. 혹시, 당신의 목표도 돈으로 표현되나요?


저도 이정도는 가지는 게 꿈...



그러고 보면, 오늘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점심 때 대충 때운 컵라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콩나물 시루 속 콩나물이 되어서 타고 다닌 만원 버스와 지하철. 돈이 많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일들, 참 많습니다. 매일 피곤한 와중에도 낙오되지 않기위해 자기계발을 밤새 하시는 분도 계시죠. 자영업자들은 어떤가요? 휴일 없이 매일 새벽까지 일들 하시지요? 이 모든 것들이 다 돈을 벌기 위한것인가요? 아닌 분도 있겠고, 얼추 맞는 분도 계시겠죠. 어쨌거나, 각자 각자가 돈이 수단이 되었든 목표가 되었든 하루하루 밀접하게 생활하고 있고, 돈 때문에 자신의 생활도 바뀌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그렇다면 힘들게 벌어서 모은 통장 잔고를 보시면 행복하신가요?

사실 우리는 금전적으로 볼 때, 굉~장히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었다곤 하지만, 사실 몇 백년 전만해도(그리 오래 전으로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태어나보니 돈의 노예는 아니었을 망정, 진짜 노예 였을 가능성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내 재산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재산이되었을 것입니다. 미국 노예제 폐지가 이야기된 미국 남북전쟁이 1860년대 일입니다. 150년 전에는 사람을 팔고 사던 시대이지요. 옛날 가장 평범했던 농사꾼이라면 내가 농주가 아니라 소작농이었을 테고, 농사는 내가 지었지만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고기반찬은 평생 꿈도 못꾸었을거에요. 지금 같은 물질적 풍족함은 근대 들어서 나왔습니다. 겨울이면 보리고개를 넘었던게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때에는 돈을 모으는 건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만 해도 땡큐입니다. 부자들은 돈이 아니라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세상이었죠. 돈 때문에 아득바득 하면서 살고 있지만, 사실 돈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아득바득 살던 때가 있었단 말이지요. 지금 처럼 먹거리 걱정없이 풍족한 시대가 많지 않았습니다.


노예도 사고 파는 재산 중에 하나였습니다.

사실이 이렇다고 해도, 물질적 풍요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는 그닥 행복하진 않습니다. 아마 통장 잔고를 봤을 때 행복하시다면, 이미 부자이시겠죠. (자신이 만족할 만큼 가지는 것이 부자라면) 대다수는 부자가 아니라서, 돈을 위해 아득바득 살아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웃긴 면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목표이고,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데요, 정작 여러분은 돈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돈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살고 계신가요.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돈이 뭔지는 알아야 돈을 내 생각대로 조절하면서 불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돈이 뭐길래 다들 돈을 위해 살아가나요?

돈은 무엇인가요?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알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돈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아니 책 한두권으로 표현하기도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돈이 한마디로 이야기 할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이었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돈 때문에 살아가지도 않을 겁니다. 모두다 박사가 되어 있겠죠.
그럼 왜 돈에 대해 이해하기가, 파악하기가 이렇게 힘든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물물 교환 수단으로 간단한 의미를 가지던 돈이 점점 변화하고, 복잡하게 발전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된 것이지요. 마치 생명처럼 진화하고 변화하고 퇴색하기도 했던 것이 지금의 금융시스템입니다.
당장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의 돈의 나이도 채 5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금본위제를 폐지하게 된 때가 1971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돈의 역사는 40년이 갓 지났습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자세히 할 때도 오겠죠?
과거와 현재의 돈의 변화가 시사하는 점은 앞으로 50년 뒤의 돈도 지금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 입니다. 그 시점은 큰 기회일수도, 큰 위기일 수도 있겠죠.

또 하나, 금융과 돈이 복잡한 이유 중 하나는, 학문의 짧기 때문입니다. 1700년대 이전까지는 돈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함께 했지만, 체제로서 지지되고 연구된 것은 1700년대 이후이지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이전까지는 체계적인 경제학 서적이 없었습니다. 즉, 경제학이란 30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직 성숙하고 완벽한 경제 체제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 이제 이렇게 복잡하고 모호한 돈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미리 이야기 했듯이 짧은 여행은 아닐 것 입니다. 저도 모르는 길이니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도한 공부나 할겸 복잡한 용어와 수식은 되도록 피하고, 현실에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나가 보려고 합니다. 블로그에 그 첫 발을 내 딛습니다.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원인 판별의 오류

빨고나서 처음 입은 바지에 커피를 쏟았다.

순간 "한번 더 입고 빨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커피를 쏟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을 잊은 채 빨래를 일찍한 것에 대해 후회한 것처럼, 잘못된 질책과 후회를 누군가에게 하지 않았을까 부끄러워졌다.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2012 호주 여행기] 0. 여행 전 1

래 나는 인간이다.

그래, 나는 방바닥에 앉아 달달한 아이스 티를 홀짝대며 별 노력없이 이 글을 끄적대는 순간에도 -- 좀처럼 만족이라고는 몰라서, 항상 뭔가를 원하고, 설령 그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만족의 기분은 금새 달아나는게 일반적인 -- 인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채 불만에 가득한 상태이다. 이러한 불만족은 인간이란 동물을 위대하게 만들었지만, 반면에 인간이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불만족한 상태에서 만족할 때까지 힘든 노력 하기, 만족스러운 것에 중독되기, 불만족한 상황에 순응하고 만족하기 등의 활동을 하면서 보내도록 만들어버렸다.
 만족을 위해선 꿈을 이루어야 하고,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으니 더욱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 한다. 목표가 하나여선 금방 해결이 될테니 인생의 목표는 기다란 리스트로 관리해야 한다. "버킷 리스트" 말이다. 하나같이 자기계발서는 목표 세우기, 꿈 이루기에 열중하고, 철학서는 현실에 만족하기를 종용하고, 팝 문화와 상품들은 자신들에 중독되기를 열망한다. 중요한건 저자와 문화 생산자들 본인도 유심히 관찰해 보면 현실에는 불만족한 채 장미빛 꿈을 꾸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하나의 만족이 생겼을 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한 순간의 짧은 만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평생을 바친다는 것은 흥미롭다. 겨울이 추워도 봄,여름,가을을 만족하며 지낸 배짱이 보다는 봄, 여름, 가을을 참고 견디며 짧은 겨울만 쉴 수 있었던 개미가 훌륭하다고 가르치듯, 인간은 미래의 짧은 만족을 위해 현재의 긴 불만족을 참을 수 있는 동물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같은 크기의 자극에 둔해지는 습성이 있어서 만족에는 점점 더 강한 것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즉, 좀 더 노력하고, 더 오래 참아야, 이후의 만족감도 커진다. 이러한 만족과 불만족의 사이클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니, 결국 인간이 더 노력을 하였을 때, 미래에 기다리는 것은 훨씬 더 큰 시련과 의지와 견딤이 된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만족을 향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만족이 되기도 하는데, --결과를 알기도 전에 열심히 한 것에 대해 느낀 뿌듯함, 아마 대부분 경험했으리라.-- 어떤 심리학자의 책에서 읽은바로는, 이러한 감정이 극단으로 가면 피학적인 것에서 만족을 느끼기도 한단다. 고통과 그것을 참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끼게 된다나 뭐라나... 과정이 목적이 되다보니, 참는 것 자체가 만족이요 목표가 되는 게 --필요해서 돈을 벌다보니 돈을 버는게 목적이 되고 그 외에는 필요가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 것이-- 인간이란게 어쩔 수 없어보인다.

 그런데, 여행 이야기 한답시고 왜 이런 오프닝이냐고?

 생각해보면, 사서 고생의 대표자 격인 여행이란 행태도 뭔가, 이런 인간의 습성과 연관이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려한다. 이동하는 동물들 조차 이는 기후 변화나 먹이등의 생태계 변화에 따라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 더 힘든 곳,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다.
 이와 달리, 인간은 왜 여행을 하는 걸까?  왜 인간들은 "모험"이랍시고, 위험한 일과 남이 하지 않은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도전하는 걸까? 가장 편하게 살기 좋은 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 아닌가? 고생인데다 위험하고 더군다나 돈을 내면서 해야 하는데다가, 무념무상으로 최상의 기온과 음식, tv와 인터넷이라는 최상의 컨텐츠를 가진 휴식의 최적의 장소인 "집"에서 쉬는 것을 포기하면서 말이다.

  "OO,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과연 그러하다! 남들 가지않는 먼 곳까지 간다는 것, 남들이 하지 않은 모험들은 인간에게는 만족스러운 일이고, 삶의 목표가 되는 행위이다. "어디" 까지 가봤다는 것은 자랑거리 면서 부러울만한 거리이고, 이런 "넌 아직 안 가봤니?" 식의 물음은 듣는 사람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항공사 광고가 바로 그 곳을 자극한다. 사서 고생하는 대표적인 행동이면서, 누구에게나 버킷리스트에 하나정도는 있는 "어디를 가보고 싶다"는 욕망. 쉬고 리프레쉬 하기 위해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필요없는 고생을 해야 한다는 점은, 인간이 가진 한정된 인생과 에너지의 효율성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왜 떠나려고 하고, 떠남을 갈구할까?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사람들은 자기가 난 곳에서 살다가, 죽는게 순리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단순히 어디에 가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에 있었을까? 떠나지 못해서 불만족에 평생을 살았을까? 과연 떠나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느꼈을까? 왜 지금의 우리는 여행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현실의 불만족을 피해, 만족감을 채우려는 욕구 한가지. 그에 따르는 과정도 만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습성 한가지. 목표나 꿈과 더 큰 만족에 혈안이 된 현대 사회 한가지. 결국 여행이란 건, 이러한 것들이 선물해준 인간이 인생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순간엔가 나도 모르게, 나도 떠남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다. 멀리가고 싶다. 나 혼자만의 경험을 하고 싶다. 그런데 정작 어디로 떠나야 할지는 생각이 없었다. 그냥 무작정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니, 자연적으로 왜 떠나고 싶은지 자신에게 되물었고, 또 물어봤지만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엇다. 정작 생각한 답이 "본능 아닌가? 다 그런거 아냐?" 였으니까 말이지.
  이런 생각들의 결론은 "여행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며, 나는 여행 자체로도 만족할 수 있어."였다. 지금 나는 뭔가 욕구불만의 상태이고, 그리고 그런 부족함은 이전에도 여행을 하면서 채워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에게 평소 부족했던 만족이란 감정을 얻기위해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그것이 불편하고 힘들고 위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과정과 결과에 만족할 자신을 가지고...

 사실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여행은 내 삶을 채워준다. 나에대해,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은 재미있다.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생각할 거리를 가지고 다른 관점에서 관찰하게 되면 깨닫는 것이 생긴다. 이 때문에 흔히들 여행을 통해서 성숙한다고 말한다. 나도 더욱 더 성숙한 내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확신하건데, 이번 여행 이후의 내 모습은 이전의 모습과 많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안타깝게도 잘 변하지 않는다. 나 또한 이때까지 그러해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나에게 만족을 줄 것이고, 이는 더 큰 불만족과 시련을 견디게 해 줄 마취제가 될 것이다. 그걸 성숙이라고 궂이 말한다면 나도 여행을 통해 더욱 성숙해 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변하거나 성장한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본질적인 나는 그대로이다.
 나도 인간이기에 떠남을 갈구한다. 그리고 기다림의 끝에 떠날 때가 되었다.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단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상태이지만...

- 이어서 계속... -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1. 이해하기 힘든 서비스를 만든 건 사용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의 잘못이다. 이래저래 설명이 된다 해도 모두가 이해할만한 서비스 기획과 운영이 되지 않은 점은 책임이 서비스 제공자의 몫인 것 같다.

2. 이번 "안철수 룸싸롱"이 터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관련 뉴스가 네이버에서는 나오고, 다음,구글에서는 인증 요구가 나왔겠지. 그 뉴스를 찾기위해 검색을 했다면 네이버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을 것이다. 네이버는 이러한 사용자 불편을 알고 있었고, 다음은 모르고 있었을 것.(이를 불편을 해소하는 방식에서 네이버에 문제가 있었다지만..) 네이버가 가진 장점중 하나가 이러한 디테일함일텐데, 이번 일에선 오히려 독이됐고, 경쟁사에는 패 하나를 보여준 꼴이 된 듯.

2012년 7월 30일 월요일

다크나이트 라이즈 감상문


개봉하자마자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막 쓰고 싶었으나,
스포를 안쓸 수가 없어서 참고 IMax로 함 더보고 쓰자 하다가...
못참고...이제 영화 개봉한지도 좀 되었으니,
스포 마음껏 들어있는 감상문을 쓴다. ^^;;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보지않은 분들은 뒤로가기를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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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끝으로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삼부작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으나...)


1. 공포


짚고 넘어가자면 3부작의 가장 메인 키워드는 "공포"이다. 배트맨 시리즈의 프리퀄, 혹은 리부트로써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어떻게 배트맨이 되었나?" 였는데, 이에 대해 감독은 공포, 두려움 - fear - 에 대해 철학적으로 짚어가면서 배트맨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첫장면은 브루스 웨인이 마른 우물에 빠져 처음으로 박쥐에 대한 공포를 경험하는 것. 이후 성인이 되어 부모님을 죽인 복수를 하려 하지만, 두려움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일, 고담시 최대 범죄조직 보스 카민팰콘은 "잃을 것이 많아 두려움이 생긴다." 라고 두려움의 근원을 이야기하고, 이말에 브루스는 고담시를 떠나게 되는 것.

두려움은 영화 초반부터 가장 큰 테마이고, 드디어, 라스알굴이라는 테러리스트로부터 수련을 받으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 방법은 다름아닌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이 그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 
(기억이 안난다면 다시 영화를 보자!)

수련을 통해 두려움이 사라져,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죽음조차 두렵지 않게된 브루스는 고담에 돌아와 배트맨이 된다. 자신의 두려움의 근원(어릴 때의 박쥐)까지 내려갔던 브루스는 이후 두려움이었던 박쥐- 바로 배트맨이 된다. 가르침대로...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하나의 목적. 그것을 넘어 남들의 두려움이 되는 것이 하나의 목적, 그리고 자신의 약점이될 자신이 잃을 만한 것(자신이 아는 사람들- 특히 레이첼)을 방어할 분신의 목적. (뭐, 자신이 닌자 수업중 얻은 은신술도 박쥐에 써먹을 만한 컨셉이었기도 하겠지만...)

라스알굴의 부하로 악당으로 나온 조나단 크레인(정신병원 의사)의 약물이 가진 효과가  각자의 공포를 극대화 시키는 점은 배트맨 비긴즈가 가진 뚜렷한 테마 두려움을 계속해서 보여주지만,

배트맨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겁없음의 경지(한국말은 유치하지만 영어로는 fearless!!!!!  그리고 죽음이 두렵지 않은 willing to die!!!!!)에 이르고 , 그 결과 더 강해진 진정한 배트맨이 되어 첫번째 영화는 끝.



2. 다크나이트

그리고 두번째로 나온 영화, 다크나이트, 두둥~!!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트맨일까? 조커일까? -- 싶을 정도로 조커를 전면에 내세웠다.

과연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 vs 조커의 승부는 누구의 승리인가?
결과는 흥미진진했던 내용과는 상관없이 조커의 완승이었다.

배트맨은 고담시의 평화를 원했고, 조커는 완벽한 혼돈(chaos)를 원했다. 그래서 이들의 승부는 원래부터 배트맨이 조커를 잡나, 조커가 배트맨을 속이냐가 아니었다. 그렇다- "고담시의 미래!"를 두고 두명이 맞붙은 것이다.
배트맨이 활동하는 고담시에 대해 한계를 느끼던 배트맨, 그가 고담시의 미래로 본 것은 "하비 덴트 검사". 조커는 배트맨을 꺾는다고 호언장담을 했고, 생각한 방법이 바로 배트맨 스스로를 무너뜨리도록 이용하는 것.
이를 위해 영화는 초반부부터 길~게 고담시의 현상황과 배트맨이 생각하는 고담시의 미래,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조커를 설명한다.

배트맨이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레이챌, 그리고 레이첼의 연인이자 고담의 미래인 하비덴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여기에 약간의 트릭을 가미해 배트맨을 속이고 레이첼을 죽인다. 이로써 배트맨은 의도치않게 1편에서 부터 이야기 되던 자신의 소중한 이의 "희생"을 하게 되고, 이 선택을 배트맨이 한 것으로 포장시켜, 고담의 미래 하비덴트를 악인으로 변절하게 만든다. 하비덴트가 무너지도로 미끼가 되어 배트맨에게 잡힌 조커지만, 잡히냐 아니냐의 내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승부는 조커의 완승.

그러나 배트맨은 예전에 배운 교훈이 있지. 무엇도 두렵지 않고, 희생가능하다는 것.
과연 배트맨은 어디까지 희생가능한가? (3편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직 모든 걸 바치지는 않았다고...)
자신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각오와 정신력.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배트맨은 자신이 범인이 되고, 하비덴트를 영웅으로 만든다. 사실 고담의 미래는 여기서 죽었다. 배트맨은 1편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희생에 대해 떳떳해지고, 무엇이든 할 용기가 생겼지만, 2편에서 "그럼에도 패배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2편은 크라이막스이면서 배트맨의 패배를 이야기하는 비극의 장. 배트맨은 약해지고, 악한으로 포장되고, 고담시의 미래였던 이는 죽었다.

3. 다크나이트 라이즈 - 그리고 겁없음(fearless) 보다 강한 것은...?

상상보다 패배의 폐해는 컸다. 물론 고담시는 하비덴트 법으로 범죄자를 잘 가두고 있었지만, 배트맨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상처뿐인 결과. 몸은 만신창이이고, 회사 재정마저 기울어간다. 배트맨은 악당으로 정평이 나 있는 상황. 물론 자신이 기꺼히 감수하겠다던 것이지만 그는 은퇴 후 나약할 대로 나약해져 있었다. 베인이 강한게 아니라 배트맨이 약해진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았다며 죽음을 각오한 그더라도 지고만다. 다크나이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fearless만으로는 역부족인 것이다. 다시 모든 걸 내던지겠다고 배트맨이 되어 나타나지만 처참하게 깨진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다시 1편에서 했었던  "두려움"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알프레도는 떠나면서 이야기한다. 기꺼히 죽겠다는 생각은 잘못 된 것이라고...(물론 돌려 이야기 하지만...)  두려움 없는 게 다가 아니란 것. 모든 것을 희생한 결과가 그러한 배트맨에게 베인은 강하다. 베인이 강한 것 보다 배트맨이 약해진 것이지. 그런 배트맨에게 내려진 벌은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에서 고담의 최후를 보는 것. 그리고 다시 무기력함과 "공포"를 느낄 것. 그러나 그 감옥에서 브루스는 깨닿는다. 자신이 잃을경우 두려운 것들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겁이 없을 때보다 두려움을 가질 때 더 강해진다는 것. 내가 지켜야할 것이 있을 때 더 강해진다는 것을... (감옥의 탈출을 실패하는 것은 끈을 묶고 도전하기 때문이다. 끈 없이 몸을 던졌을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삶에 대한 욕망이 있을 때 진정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지켜야할 것. 잃는 다면 두려운 것에 대한 개념이 명확해진 배트맨은 강해진다. 혼자가 아니다. 그 옆에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게 되고, 그가 지켜야할 사람들과 도시가 생긴다. 진정한.. 더 성장한 "완성체 배트맨"의 탄생인 것이다.

유달리 3편에서 배트맨이 아닌 다른 조력자가 많아진 이유이다. 경찰들과 시민들. 동료로써 도와준 사람들. 로빈. 제임스 고든, 자신의 사랑이된 캣 우먼. 다 같이 적에 대항한다.  강해진 배트맨에게 오히려 베인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전반부의 강했던 베인이 힘없이 나가 떨어지는 이유는 배트맨이 성장하고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막상막하의 승부를 포기하고 전반부의 베인의 원사이드 격투기, 후반부의 배트맨의 원사이드 격투기를 대비시킨 건 이 때문이리라... 싸움 자체도 조커와 달리 정면승부. 무기 사용없는 격투기인 이유도 이때문이라 생각...)

마지막 핵폭탄을 가지고 바다로 사라진 배트맨, 그리고 보이는 버섯구름, 이어지는 장례식...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배트맨은 죽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예전의 배트맨이었다면 같이 자폭을 했을 확률 100%. 그는 기꺼히 죽겠다고 결심하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변했고, 죽음에 대해 거부하고, 살기를 희망하는 배트맨이 되었고, 마지막 까지 살려고 노력하는 배트맨이 되었다.
그는 알프레도의 소원을 이루어주고-자신의 행복을 가꾸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므로써...-, 혼자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짊어지겠다는 생각도 버리고 파트너를 부른다.(로빈을 자신의 파트너로서 아지트로 부른다.). 1-2편에서 레이첼을 놓아주어야 했던 것과 달리 사랑을 찾는다. 이제는 혼자서 모든 것을 두려움 없이 버릴 수 있던 배트맨에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이 소중한 것을 알고, 이를 지키려 하는 배트맨으로의 성장. 이 것이 이 세 편의 마지막, 완벽한 결말이다.



부록.
-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면서 든 생각들.

*. 베인은 완벽한 낚시다.

2편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메인 광고 모델이었다. 배트맨의 영화였지만, 포스터에 나오는 모습 자체가 5:5. 마케팅 부터 조커가 중심이었고, 영화 자체도 조커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결국 조커가 승리한다.

그리고 나온 3편 다크나이트 라이즈. 베인이 그 마케팅을 답습한다. 슈퍼볼 광고 때를 비롯해서 베인을 주축으로 공격적 마케팅을 한다. 사실 이는 최종 보스를 숨기기 위한 의도적 기술인 듯 보인다. 조커 급으로 퍼부은 마케팅 뒤에는 그녀는 배우 명성에 비해 크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라, A급 연기자를 쓰면서도 주요인물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인셉션 배우들을 대량 투입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들게 한다. (아마 그녀만 달랑 나왔다면 처음부터 주요 인물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떼로 나오는 통에 묻어갈 수 있었던 듯)

*. 감옥.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이 깨닳음과 함께 성장하게 되는 장소 "감옥". 여기는 굉장히 특이하게 생겼는데, 생각해보면 1편 배트맨 비긴스에서의 "우물"과 상당히 닮아 있다. 역시 의도적이라 생각된다.

*.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전쟁도 있고, 테러도 있고, 영웅과 악당도 있고, 사랑도 있고, 철학과 깨닳음, 반전도 있다. 이게 바로 구성상의 스.케.일. 무식하게 규모만 키운 영화와 다른점.

*. 빈틈
 영화가 끝나고 보면 빈틈이 많다. 하지만 감독은 전작에서 이야기 했지. 중요한 건 꿈 꾸고 있을 때 모를 정도의 적당한 미로(maze)이지,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영화 보는 중에는 푹 빠져서 보게되니 시간가는 줄 모름.

*. 이제 기대할 것은 슈퍼맨.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과 함께 놀란은 배트맨을 떠나지만, 슈퍼맨 제작을 맡고 있다. 영화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슈퍼맨 맨오브 스틸 예고편이 나왔는데, 배트맨 시리즈 만큼 사실적이고 어두운 영화가 될 느낌...ㅎㅎ 놀란 제작인 만큼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나왔으면,,,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로 가는거닷!!! 어벤져스 처럼... (마블의 성공을 보면서 DC는 정반대 되는 컨셉을 생각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2012년 7월 9일 월요일

나는 곰입니다.

나는 곰입니다.


                         - 정민


나는 곰 입니다.
건빵을 던져주세요.

나는 곰 입니다.
건빵을 던져주세요.
훌라춤을 추어 드릴께요.

나는 나무를 타고,
생선을 잡고,
땅을 쿵 울렸던
십대의 미련한 곰 입니다.

훌라춤을 출게요.
그러니, 건빵을 주세요.
행여나라도 잡아 먹지 않을게요.

2012년 7월 1일 일요일

좋은 영어이름 추천해 드립니다.

"저기, 영어 이름이 뭔가요?"

  우리나라 영어학원을 가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입니다. 아, english name이라고 하죠. 없다고 대답하면 그것도 없냐는 듯한 눈빛을 받게 되면서 좋은 이름 후보들을 쭉 가르쳐 주죠.  네이버에서 영어이름을 검색해보면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영어이름&sm=top_hty&fbm=1&ie=utf8) 수많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요즘엔 학교에도 원어민 교육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영어이름을 하나씩 짓고 있으니, 이제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탐, 존, 에슐리, 제니퍼, 킴벌리가 흔해지는 일도 얼마남지 않았군요.

  저도 영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어 이름이 무엇인지 한 두번 질문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때마다 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my english name is jeongmin kim." 이렇게 대답하면, 잘 못 들은 듯 "예?" 하거나 "영어이름이 없으시군요." 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죠. 그때는 다시 똑같이 한번더 대답 합니다. "my english name is jeongmin kim." 예. 제 영어이름은 제 한국이름이랑 좀 비슷합니다. 물론, 이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당신의 영어이름을 지을 때가 되었다면, 이름을 만들기 전에, 그 이름의 용도와 쓰임새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 이름은 왜 필요할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어떤 이름들의 경우 외국인이 발음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이름을 이상하게 불러주는 경우 못알아 듣거나 거북한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발음을 가르쳐달라고 몇 번씩 물어볼 수도 있고, 외국인이 이름을 잊어먹는 경우도 허다할 겁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궂이 영어 이름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내 이름의 발음이 어려운 것은 내 잘못이 아니고, 또한 발음을 하지 못하는 것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쓰는 분들에게 어려워 하는 발음은 비슷비슷해서 처음에야 그들의 발음이 한국인의 발음과 달라 어색할 뿐이지, 외국인이 나를 부를 때마다 전혀 다른 발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발음에 익숙해지면 제 이름을 부르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제 이름을 발음하면 "기무 존밍 상"이 됩니다. 하지만 알아듣습니다. 영어라고 다르진 않죠. "좐민 킴"이라 하겠죠. 이 또한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고 내 일본 이름은 나카무라야. 라고 하진 않잖아요. 영어에서만 왜 이름을 바꿔야 하나요? 영어를 배우는 유럽인, 남미인, 아프리카인 모두 영어이름이라면서 카톨릭 이름, 유명 배우이름으로 바꾸진 않습니다. 유독 한국사람들만 영어이름을 가지지요.

  사실, 영어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우면서 영어이름을 만드는 것은 외국인 선생님의 편의를위하는 면이 큽니다. 한 반에 킴이 5명 리가 3명 박이 2명입니다. 선생님도 미칠만 하죠. ^^ 하지만, 선생님이 학생 이름이 힘들다고 학생 이름을 바꾸라고 강요해선 안되겠죠? 그분들을 위해 우리가 이름을 갈아 드릴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배려심이 엄청나다면 박봉에 힘든(?)_ 선생님을 위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는 싯구절처럼,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제가 이름을 "존 킴"으로 바꿨다면, 그에 따른 저의 정체성도 변화하게 되었겠지요. 알게모르게, 제가 가진 이름은 여러가지 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름을 별다른 이유 없이 단지 영어 선생님의 편의를 위해 바꾼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몇년전 에미상에서(로 기억합니다.) 캐서린 헤이글이라는 배우가, 수상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잘못 호명한 발표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잘못 말했다고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전 당당한 그 모습이 멋있어보였습니다. 어려운 이름은 이름 주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름이 어렵더라도, 그건 이름 주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름을 잘못 부르는 사람이 미안해 할 일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이름을 못외우거나 잘못 부르는 사람이 잘못이 지, 이름의 주인이 욕을 먹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유독 영어에 있어서는, 이름에 대해 왜 한국인이 먼저 미안해하고, 그들에게 쉬운 이름으로 개명을하고, 그걸 뉴요커나 된 듯 뿌듯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인 에드월드가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 이름을 장동건으로 바꾼다면, 저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 네오날도 디캐프리오로 제 이름을 갈겠습니다. 그 전까진, 저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김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