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 정 민
순간! 연필심이 부러졌다.
누런 갱지는 너무 넓어서, 같은 말만 반복해 쓰기엔 숨이 찼다.
혼자 무릎 꿇고서
소매가 까매지도록 연필을 굴린다고
새 사람이 될 거라 선생조차 기대하지 않았기에,
내 가슴너비 두루마리는
선생에게도-, 내게도-,
용서와 복종의 좋은 구실이었다.
내가 해야할 것 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먼저 정해졌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지 않도록 하는 것.
적어도 반성문을 쓰는 건, 내가 한 것의 결과였다.
내 삶이란 종이는 끝없이 넓어서
난 아직도 같은 단어를 채우고 있다.
삶의 목표가 그 종이 한 장을 다 채우는 거라도 되는 듯이.
볕 하나 들지 않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 난 혼자 쭈그려 있다.
순간의 고요함을 이기고 사각사각 소리가 다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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